여성의 자궁이 국가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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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법개정 백지화… 정부·의료계·시민계 온도차


취재팀 곽은영 기자



사진=셔터스톡


보건복지부가 지난 9월 23일 현행 의료법 시행령에 ‘비도덕적 진료 행위’ 항목으로 모자보건법 14조 1항을 위반하는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포함시키고 불법 낙태술을 시행하는 의사에 대한 처벌 기준을 강화한다는 개정안을 발표했다. 이에 대한산부인과의사회와 여성단체 등의 반발이 거세지자 11월 11일 불법 낙태수술을 ‘형법 위반행위’로 변경하고 위법 시 의사 자격정지 기간도 개정안의 12개월이 아닌 현행과 같은 1개월로 유지하기로 하는 수정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한번 지펴진 불은 꺼질 줄 모르고 있다. 의료계와 시민계는 “문제는 낙태가 아니라 낙태죄 자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복지부 “낙태는 비윤리적” vs 의사회 “입법미비 법안”
 

보건복지부가 9월 23일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대한 기준을 담은 ‘의료법에 관한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을 발표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비도덕적 진료 행위 항목에 모자보건법 14조 1항을 위반하는 인공임신중절수술(낙태수술)을 포함시키고 불법 낙태수술을 할 경우 의사는 현행 1개월에서 최대 12개월로 상향 조정된 자격정지 처분을 받는다.

 

의료계는 개정안의 ‘비도덕적 의료행위’에 임신중절수술이 포함된 것에 크게 반발하며 해당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합법적 낙태를 비롯한 모든 낙태수술에 전면 보이콧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보건복지부는 대한산부인과의사회와 여성단체 등의 반발이 거세지자 11월 11일 불법 낙태수술을 ‘형법 위반행위’로 변경하고, 자격정지 기간도 현행과 같은 1개월로 유지하기로 하는 수정안을 발표했다. 정부가 사실상 불법 낙태수술 시행 의사에 대한 처벌 강화안을 백지화했지만 대한 산부인과의사회를 비롯한 여성단체들의 반발은 여전히 강하게 이어지고 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이하 의사회)는 지난 11월 14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비도덕이라는 명칭을 비윤리로 바꾼다고 하더라도 이번 논란의 전과 비교해 달라진 내용이 없으며, 임신 중절수술을 포함해 정부에서 제시한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처분하는 것 자체가 위헌이며 위법”이라고 말했다.

 

의사회가 지적한 내용 중에는 모자보건법의 모순을 지적한 내용도 있는데, 모자보건법 제14조 1항에 의하면 ▲본인이나 배우자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또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해 임신된 경우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간에 임신된 경우 ▲임신의 지속이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는 경우 등에 한해 24주 이내에 인공 임신중절수술을 허용하고 있다.

 

의사회는 모자보건법 중절수술 허용사유가 1973년에 개정돼 현재 의학적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유전학적 정신장애가 있는 경우나 풍진처럼 18주 이후에는 태아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전염성 질환에 대해 낙태수술을 허용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모자보건법에 의하면 기형아를 유발할 모체의 전염성 감염은 낙태 허용 사유지만 생존 불가능한 기형아로 확인된 태아의 인공임신중절수술은 허용하지 않는다.

 

의사회는 성명서를 통해 “낙태죄 처벌에 관한 형법과 모자보건법은 입법미비 법안으로 의사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처벌하는 것은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며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의사에 대한 행정처분을 유예해야 하며 인공 임신중절수술을 비도덕적 진료행위 유형으로 규정해 종전과 같이 의사에 대한 행정처분을 계속하겠다는 것은 위헌·위법적인 발상”이라고 강조했다.

 

모자보건법에는 왜 여성만 있고 남성은 없나?

 

국내 법률상 모자보건법에 의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 낙태는 불법이다. 이를 부추기고 종용하면 낙태종용죄에 해당한다.

 

낙태가 형법상 범죄로 규정된 시점은 1953년부터로 형법 제269조 1항에는 “(여성이)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은 거의 사문화된 조항으로 불법낙태는 현실에서 암암리에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연간 낙태 수술 약 17만건 중 69%는 원치 않는 임신, 경제적 사정, 주변 시선 등 사회·경제적 이유로 모두 불법으로 이뤄졌다.

 

낙태가 허용되는 경우에도 ‘사실상의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을 포함한’ 배우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여성이 스스로 낙태를 결정할 수 없다는 이 법적인 사실은 낙태죄 자체가 잘못 되었다는 입장에 힘을 실어준다. 여성의 신체에 이뤄지는 일에 남성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과, 처벌을 받을 경우에는 여성만 범죄자 취급을 받는다는 사실은 남성 중심적 사회 제도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모자보건법의 이름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의 이유와도 상통하는데......


곽은영 기자 news1@comp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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